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역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초기 거주자들은 발칸 반도 북서부를 침략한 인도유럽어족의 일리리아 인들이었다.

 

그러나 구석기시대의 자취가 우소라 강 어귀에서 발견되었고 상당량의 신석기시대 유물이 부트미르·도냐마할라·

클라카르도니이·카카니·노비셰헤르에서 발굴되었다. 헤르체고비나의 주요 신석기시대 유적지는 코니츠 근처의 리시치치이다.

청동기·철기 시대의 자취도 볼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철기시대 유적지는 도냐돌리나·글라시나츠·리파치이다.


 

로마에 정복당한 후 이 지역 대부분이 로마 제국의 달마치야 속주에 포함되었고 6세기 후반에는 슬라브인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10세기에 보스니아는 차슬라브 공이 다스리는 세르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960년경 그가 죽은 후 크로아티아 왕국으로 넘어갔고

1018년 이후 비잔틴의 지배하에 놓였다.


12세기 헝가리 왕국은 일련의 도독(都督) 또는 총독을 통해 이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했으나 이 시기동안 보스니아는 국력이 커지고

독립국의 지위를 누렸다.  1322년 보스니아인 스테판 코트로마니치가 도독으로 선출되었고 14세기 나머지 기간 동안 코트로마니치 왕조, 

특히 스테판의 조카인 트브르트코 1세의 지배하에서 세르비아 왕국의 훔 속주와 아드리아 해안의 많은 지역까지 보스니아의 영토를 넓혔다.

 

1386년 오스만 제국인(투르크)이 보스니아를 침략했으며 수차례의 전투 후 1463년 투르크령으로 만들었다.


 

보스니아는 투르크의 지배하에서 경제적으로 쇠퇴해갔다. 훔 속주는 세인트 사바의 '헤르체그'(공작)라고 스스로 명명한 지배자들하에서

속주를 오랫동안 유지하였는데, 헤르체고비나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16∼17세기 투르크와 합스부르크왕가·베네치아의 끊임없는 

전쟁에서 보스니아는 투르크의 중요 전초기지였다. 


이 시기에 주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에서 밀려남에 따라 보스니아에 대한 이들의 지배는 점차 부담스러워 졌고,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교도 모두 콘스탄티노플(오스만 제국의 수도, 지금의 이스탄불)로부터의 간섭을 반기지 않게 되었다.


1877∼78년 러시아-투르크 전쟁 후 베를린 회의에서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투르크령이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정복지로 인정되었고 1908년 10월 7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합병되었다.


 

새로운 헌법에 따라 유권자를 3개의 선거인단으로 나누고 각 선거인단 내에 일정한 비율로 정교회, 로마 가톨릭교, 이슬람교의 의석을 할당했다. 

이러한 결정은 증폭되고 있는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출신의 세르비아계 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함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이 사건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야기되었다.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1918년 10월 26일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의 일부로서 세르비아에 합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들은 크로아티아계 공산정권의 인종학살정책으로 극도의 고통을 겪었고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두 지역은 1946년 유고슬라비아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1989∼90년 공산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유고슬라비아를 휩쓴 민족주의 물결에 휘말렸다.

 

1991년 크로아티아가 연방을 탈퇴한 후 보스니아의 크로아티아계와 이슬람계는 다민족 공화국 수립을 요구하는 국민투표 실시에 찬성했으나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는 실직적으로 세르비아가 주도해온 유고슬라비아로부터의 독립을 반대했다. 

1992년 이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내전으로 인해 황폐화되었고, 이 기간동안 각 민족들이 자신들이 차지한 지역에서 타인종을 일소하는 '인종청소'가 자행되었다. 세르비아계는 북쪽과 동쪽의 대부분을, 크로아티아계는 서부를, 이슬람계는 중부 및 북서부의 도시를 차지했다.

 

1995년 12월 평화협정 조인으로 내전이 끝나고 이 협정에 따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이슬람계-크로아티아계 연방과 세르비아계 공화국으로 분할되었다.


 

주요 도시 모스타르를 비롯해 남단의 삼각형 모양의 지역을 차지하는 남부와 남서부의 헤르체고비나와 사라예보를 비롯해 넓은 중·북부 지역을 차지하는 보스니아로 이루어져 있다. 헤르체고비나는 역사상 대부분 보스니아에 종속되었다. 수도는 사라예보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동쪽으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경계를 이루며, 북쪽·서쪽·남쪽 등 3면을 크로아티아가 둘러싸고 있다. 헤르체고비나는 좁은 회랑을 통해 아드리아 해의 네레트바 해협에 있는 네웅에서 바다와 맞닿아 있으며, 이 회랑이 크로아티아 달마치야 해안 가운데 두브로브니크 북서쪽 약 40km 가량의 지역을 크로아티아 본토로부터 갈라놓았다.


면적 51,209㎢, 인구 3,835,000(2009 추계).

 

이 지역은 오랫동안 지역 지배권을 둘러싸고 경쟁해왔던 강력한 지역 세력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이러한 영향들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유달리 풍부한 인종적·문화적 혼합 지역으로 만들었다. 이슬람교·동방정교·로마가톨릭교가 공존하고, 이 3개 신앙들은 3가지 주요한 인종 그룹인 보스니아 이슬람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에 각각 상응한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역사적·지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여러 인종으로 이루어진 국민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오랫동안 민족주의의 영토 확장 열망에 불붙기 쉽게 만들었다.


 

1918년 새롭게 건국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에 통합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분리 이후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독립을 얻었다. 하지만 나라는 바로 더욱 확대된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